LEE MYUNGMI: How to cross the desert

6 April - 9 Jun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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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의 그림은 쉽고 재미있다. 그는 천진한 아이처럼 거침없이 작업하며, 그의 그림을 볼 때면 입가에 미소가 고이고, 마음이 밝아진다. 이러한 그림은 그가 살아가는 삶의 흔적으로, 그의 작업과 삶은 언제나 서로를 비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사막을 건너는 방법’ 역시 그의 근년의 삶과 맞닿는다. 지난 1~2년간, 이명미는 신체적 부상을 겪고 치료하며 회복하는 과정을 지나왔다. 이 시기는 작가에게 사막을 건너는 여정과 같았다. 그는 사막을 건너기 위하여 그곳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혹자의 말대로 그것만이 사막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가 맞닥뜨린 사막의 풍경과 그곳의 시간을 회화로 펼쳐낸다.
 
근작의 화면에는 이명미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탐구해온 그의 회화 언어가 자유롭게 오간다. 1976년 그의 작업 세계를 아우르는 주제인 ‘놀이’와 함께 등장한 기본 요소들, 예컨대 ‘점과 점선, 별과 꽃 모양, 숫자와 텍스트’ 등이 그것이다. ‘동물 그리기’에서 시작된 네발짐승은 근작에서 루이(Rui)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캔버스를 이어 붙이거나, 화면 위에 캔버스 조각을 콜라주처럼 덧붙이는 등의 바느질 작업도 눈에 띈다. 심지어 이번 전시에서는 놀이 작업이 시작되기 전, 그가 불교사상에 심취하여 반복해서 그렸던 원이 등장한다. 단, 진지함을 빼버린 원은 우산과 나란히 등장하여 글자 ‘이’처럼 보인다. 그의 다양한 회화적 언어는 근작에서 반복되고 섞이며 변주를 거듭한다.
 
이명미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재미와 흥미는 평면의 그림에서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먼저 그가 붓으로 그리는 이미지와 밝고 화려한 색의 사용 등에서 재미는 즉각적으로 전해진다. 더불어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등장시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문자는 언제나 이미지보다 진실로 인식되는 점은 그의 그림 속 이미지를 더욱 쉽게,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조금 더 들여다본다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인다. 그는 <사막을 건너는 법>에서 서로 다른 천을 박음질로 이어서 큰 화면을 만든다. 마치 퀼트나 조각보처럼 화면은 각각의 층이 한 시점에 펼쳐지며, 마치 다채널 회화와 같이 보인다. 여기서 붓질이 아닌 박음질은 그가 즐겨 그리는 점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것은 직접 붓으로 긋지 않았기 때문에 은근하면서도 입체적 감각을 드러낸다. 또한, 박음질로 이어진 부분은 팽팽하게 당겨지며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리기가 아닌 것을 작업에 포함하여 관람자가 그것의 흥미로움이나 재미를 입체적으로 감각하도록 한다.
한편, 여기서 등장하는 초록색 글자 ‘옷’은 너무나 이명미답다. 그는 ‘옷’이라는 텍스트를 마치 사람처럼 그리며, 손과 발의 자리에 ‘손’과 ‘발’이라고 적고, 옷을 입고 있다는 식으로 다시 ‘옷’과 ‘CLoth’를 작게 쓴다. 이 텍스트는 즉각적으로 완벽하게 ‘옷’을 입은 사람 그 자체로 보인다. 여기서 ‘옷’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는 단순히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다. 표음문자인 한글이 마치 이미지가 선행하는 상형문자처럼 등장하는 것을 보며 관람자는 일종의 부조리를 느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명미의 그림에서 마주치는 부조리는 해악을 끼치거나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관람자의 생각과 상상을 마구 휘저으며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근작에는 손바닥만 한 캔버스부터 150호에 이르는 작업까지 과감하게 칠해진 색면이 등장한다. 특히 <색면추상>은 제목에서부터 1950년대의 미국 화가인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나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숭고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조인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의 다른 면모, 예를 들면 진지함 또는 위대함을 지워버린 회화의 맨얼굴인 캔버스 그 자체를 보여준다. 
 
색면 속에 슬쩍 보이는 낙서와 다소 삐뚤게 구획된 선, 쓱 그어버린 연필 선을 통해서 작가는 미술사적 권위를 향해 농담을 던지고, 그림 자체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재차 확인한다.
이명미의 그림은 언제나 예술이 무엇인지를 재고하게 한다. 작가는 화분이나 머그잔과 같은 통속적인 주제를 그리며 예술의 우월함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예술은 완벽하다는 관념을 향해서 작가는 화면에 색을 칠하다 말고 선을 비뚤어지게 그리며 적극적으로 미완성의 지점을 드러낸다. 더불어 작가는 화면에 낙서를 끼적이고 우스갯소리를 써넣으며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는 작업을 할 때마다 예술이 견고하게 세우는 경계에 균열을 내고 무너뜨리며 밖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하자면, 이명미의 그림은 주류 미술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그 때문에 순수하고 무해(無害)해 보이는 그의 그림은 미술계와 주류 회화로부터 “「철없는」 타자(他者)”로 여겨지며 “내쫓김”을 당해왔다. [1]   1970년대 단색화로 점철된 한국 화단에서 시작된 그의 놀이 작업은 우리 미술사에서 오십여 년 동안 외따로, 하지만 분명하게 궤를 그리며 지금에 이른다.
 
이명미는 거대 담론이나 예술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냉소하고 블랙 유머를 내뱉으면서도, 평범하거나 연약한 것에는 한없이 다정하다. 그가 그리는 화분은 나름대로 담백한 품위를 보여주며, 아이처럼 끼적인 별이나 꽃 모양조차도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그가 드러내는 재미는, 쉽게 휘발되는 쾌락주의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근작에서 루이(Rui)로 등장하는 네발짐승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루이는 때때로 귀엽고 어설프지만, 자못 진지하게 자신의 평범한 삶을 산다. 작가는 이러한 루이를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그려낸다. 그의 작업에는 명랑하고 날카로운 비평적 태도와 함께 소중함이나 다정함, 그리움과 같은 섬세한 감각이 선명하다.
 
사실 그의 사막은 근 몇 년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서 건너가야 하는 외롭고 지난한 삶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이명미는 사막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그것을 향해 욕설을 내뱉지 않는다. 회피나 냉소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가장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막 깊숙이로 들어간다.
 
글: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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