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
최병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누구나 그의 작품이 신문지 또는 작은 일상용 품의 포장지나 종이 상자 위에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 새까만 선들 이 전면을 뒤덮고, 때로는 반복된 마찰에 의해 군데군데 찢기고 갈라져 물리적 한계에 이를 때까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70년 대 초부터 시작되어 40여 년을 지속 해도 결코 간소화되거나 단축되지 않고 끝 없이 반복되는 그의 작업을 어떤 이는 수도승의 고행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 다. 또한, 어떤 이는 최병소가 신문지를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70년대 당시 언론은 통제되고 표현과 소통은 억압되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30대 초 반의 젊은 작가 최병소가 당시의 왜곡되고 조작된 언론에 분풀이하듯 신문 기 사를 볼펜으로 덧칠해서 지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신문지 작업에만 몰두한것은 아니 다. 최병소는 1974년 <한국 실험작가전>과 1974-78년 <대구현대미술제>의 핵 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한여름 백화점 전시장에서 생선을 난도질 한 후, 생선은 사라지고 도마만 덩그러니 남겨져 냄새만 진동하게 하는 해프닝이나, 시립 도서 관 미술관에서는 현장에 있는 의자들을 즉흥적으로 개별 또는 집단으로 배치한 후, 테이프로 각 영역을 표시하고 의자가 없는 자리는 테이프로만 표시하는 등 의 개념적 설치작업과 같은 전위적 실험예술을 다수 보여 주었다. 또한, 그러한 작업들은 존재와 부재 그리고 허상과 실체에 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 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작품과 맥락을 함께 한다. 최병소가 신문지를 작품의 주 된 재료로 선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당시에는 그것이 돈도 안 들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나에게 제일 잘 맞는 재료”였기 때문이라고 요란 스러운 꾸밈없이 아티스트는 말한다.
최병소의 작품을 처음 마주할 때 느껴지는 인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상이 라기보다는 마치 태곳적 생물이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열과 압력을 받아 자연의 에너지가 만들어낸 단단한 결정체와 같은 광물질을 연상시킨다. 오랜 관 찰 후에야 우리는 서서히 우리를 지각의 길로 안내하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실체의 중요한 요소들을 검은 표면 위에서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치 자유로운 리듬을 타는 무한선율처럼 여러 방향으로 이동하며 반복되는 평 행한 선들이 교차하고 축적된 예술가의 즐거운 손놀림의 흔적이다.
그 순간, 겉으로 보기에 감정도 없이 중립적으로 느껴졌던 검은색 표면은 어느 새 감각적이고 활기차며 표현력 넘치는 한 점의 그림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 다. 신문지 위에 까만 선들로 뒤덮인 표면은 언뜻 보기에 모두가 같아 보이지만, 어제와 오늘이 결코 같을 수 없듯이 결코 되풀이될 수 없는 삶의 매 순간 속에 서 인간의 행위를 통해 예술가의 작업 과정을 통해 각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 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창조적 의지에 의해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노동과 시 간은 신문지라는 하찮은 일상적 대량 생산물에 유일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일시적인 것을 영원히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2015년과 2018년에 이어 2022년 우손갤러리에서 최병소의 세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그 횟수가 더해 질수록 기교와 허세를 싫어하는 그의 작품이 아티스트 자신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젠가 작가에게 한 번뿐인 인생에서 이런 고행과 같은 작업을 평생 해 오는 것이 힘들지 않은지 물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작업은 고 행도 수행도 아니며 매번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고 말한다. 작업마다 힘의 강약에 따라 종이가 반 의도적 또는 반 우연적으로 찢어지는 느낌이 아주 묘미라고, 아마 즐겁지 않았으면 지속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난 가끔 그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최병소는 7살 어린 나이에 6.25 전쟁을 겪고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며 피난길을 떠났다고 한다. 국민학교 때 는 노트를 살 돈이 없어서 신문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중학교 때는 독서신문이 너무 재미있어서 책 대신 신문을 더 많이 보기도 했는데, 그때 읽었던 한하운의 파랑새는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고 했다. 중앙대학교에서 서양 화를 전공하던 시절엔 서울에서 하숙했는데 앞방에 사는 녀석이 한밤중에 클래 식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서 자주 싸움이 났지만, 결국엔 본인도 클래식에 빠져 학교보다 르네상스 다방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 더 자주 갔다고 한다. 그는 여 든이 가까운 지금도 자신의 할머니와 닮은 노파를 보면 버스에서 뛰어 내려가 볼 정도로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내가 아티스트의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이러한 일화가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다. 단지, 나는 그와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 어디에서도 본인이 태어난 시대와 세계에 대한 원한이나 원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최병소는 한 인간으로서 한 예술가로서 ‘나, 거기 존재하였노라.’고 그의 작 품을 통해 너무도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 자신 또한 보 편적 틀에 맞춰진 형식적인 설명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최병소의 작품을 단순하 게 이해해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나 평론을 근거로 최병소 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의 진가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깊이 느끼게 되었고, 아무쪼록 이 전시가 관객들에게 최병소의 작품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작가를 위해 작업을 하지 못 하게 말리는 아티스 트의 아내는 말한다.“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어요. 분명 같이 잠이 들었는데, 새벽이면 또다시 쓱싹쓱싹 연필 소리에 잠이 깨요.”
이를 어찌 고행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text © 2022년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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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0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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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point pen on box
2.9 x 10.3 x 2.9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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