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 Positive Sinking: YI YOUJIN
《Positive Sinking》은 2021년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이유진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발음 실수에서 비롯된 언어유희라고 설명한다.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은 종종 “Th” 발음을 “S”와 혼동하는데, “Th” 발음을 사용하는 경우, “생각에 잠기다” 혹은 “깊이 생각한다”라는 뜻의 《Positive Thinking》으로 들릴 수 있다. 이럴 경우 “가라앉음(Sinking)”과 “생각(Thinking)” 단어 사이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며, 우리의 의식이 깊은 우물 속으로 점점 내려가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2018년 뮌헨 Tanja Pol Galerie에서 열린 개인전의 제목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등장한다. 당시 전시 제목이었던 《Unter Bewusstsein)》은 독일어로 ‘잠재의식’을 뜻하는 “Unterbewusstsein”에서 기인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추가해 “의식 아래로”라는 의미로 변화시켰다. 그녀는 이를 통해 의식을 아래로 가라앉음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유진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이 마치 깊은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끝없는 물속에 홀로 있는 것”에 비유한다. 그렇게 캔버스와 종이 위에 그려진 오브제들은 그녀의 잠재의식 세계를 담아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잠재의식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작품은 “초현실적,” “꿈결 같다,” “동화 같다,” “지브리 같다” 등의 표현으로 종종 묘사된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그녀의 독특한 화풍은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그려내는데, 고양이, 부엉이, 까마귀, 원숭이, 잠수부, 소나무, 달, 물, 구름, 창문 등의 모티프가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캔버스 위에 모호하고 불 확정적인 공간에 배치되어 있어, 그 위에 드러난 표면이 전통적인 서양 회화에서의 여백의 의미가 아니라 이유진 작가의 작업에서는 이 개념이 다르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그녀의 초기작 중 하나인 「Taucher」(2017)에서 화면 중앙의 인물은 하얗고 둥근 형태로 표현되었고, 손가락은 붉고 검은 선으로 묘사되었으며, 검은 타원형은 잠수 헬멧을 연상시킨다. 작품 속 중심 인물 주변에는 연필로 가늘게 윤곽선만 그려진 나무들이 자리하는데, 나뭇잎들은 마치 헬멧과 비슷한 구름 같은 모양을 닮았다. 인물과 나무는 흰색으로 표현되어 크림색 종이 배경과 색감이 대비를 이루면서, 대부분의 배경이 채색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나무 아래에 미묘한 물결을 더함으로써 빈 공간을 하나의 ‘물속’이라는 공간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유진 작가가 빈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그녀의 배경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1980년 강릉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0년 서울의 세종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비록 보수적인 학과 분위기와 정형화된 교육 시스템에 답답함을 느껴 학업을 중단했지만, 동아시아의 전통 회화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그녀의작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교에서 유래된 “여백의 미”로, 이 기법은 의도적으로 그림에 빈공간을 남겨 단순함과 고요함을 추구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이유진 작가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인식하고 작품에 표현하게 된 것은 독일로 떠난 이후라고 말한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뮌헨 미술대학에서 귄터 포그(Günther Förg) 교수 아래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그녀는 ‘다양한 영향과 상반된 시각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찾는 과정’에 몰두했다고 말한다.[1]
작가는 서양 회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화와 아크릴을 주재료로 삼으면서도, 캔버스나 한지를 이젤이 아닌 바닥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유지했다. 이러한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그녀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작품과 마주하며, 눈앞의 공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 속 물리적인 세계는 화면 위에 남겨진 채, 「Nocturne」 (2024)속 구 (球)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탄 한 쌍의 부엉이처럼 중력을 잃고 마치 물속으로 잠수하듯 형태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모습을 보인다. 「Migratory Being」 (2023)에서는 색이 그림자 역할을 하는 대신형태를 채우고 확장하면서, 풍경을 평면적으로 만드는가 하면, 「The Inbetween」 (2024)에서는 하늘의 한구석, 인물의 후드티 속, 그리고 바닥의 물웅덩이 속에서 서로 다른 공간들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며 중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유진의 그림은 서양 전통의 원근법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경계를 만들어 낸다.
최근 이유진 작가의 작품에는 깊이감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Whispering to the Clouds」(2024) 과 「Purple Curtain」(2024)에서 볼 수 있듯이 직선 형태의 창문은 작품의 구조적 요소를 더해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지만, 창문 아래로 내려갈수록 여전히 모호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그녀는 작업의 일부분이 “무거워졌다” 라고 설명한다. 이는 말 그대로 종이 표면 위에 더 많은 물감이 쌓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면서, 이유진 작가가 보다 명확한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이자, 가라앉을수록 더 깊이 있는 공간이 생성되는 결과이기도 하다.
《Positive Sinking》전시에서는 이유진 작가의 회화 작업뿐만 아니라 세라믹 작업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공간에 대한 탐구가 더욱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폴리머 클레이를 사용하여 조각 작업을 시작했고, 재료에 대한 고민과 탐구 끝에 세라믹 클레이로 재료를 전환하면서 마침내 회화 작업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조각 작품들은 동그랗거나 뾰족하거나, 무리를 지은 형태로 회화 속 오묘함, 모호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이유진 작가의 회화적 접근 방식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Positive Sinking》에서 등장하는 개별 작품들을 전부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관람객 각자가 작품을 직접 대면하며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이,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동물이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유진 작가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동물은 인간과 가까운 존재이자 모티프로써 매력을 느끼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른 채로 남아 있는 상태’가 작가는 더 편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논리적인 의미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예술 작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 “조사” 또는 “탐구”와 같은 단어가 흔히 사용되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작가가 세상에 내어놓는 작품은 관중에게 만큼이나 작가 본인에게도 낯선 존재다. 바로 여기에 가라앉는 것에 대한 풍부한 잠재력이 존재한다. 끝없는 물속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양면적인 모호함, 미지의 불확정적인 정의와 친근해지면서 말이다.
전시 서문: 백연하
[1] Léon Mychkine, Q&A with Youjin Yi, art-icle.fr, 12 July 2023. https://art-icle.fr/qr-with-youji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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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Back to the Black,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70 x 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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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Cat,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canvas70 x 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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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Eggs, 2021oil, oil pastel, graphite on Korean paper, mounded on canvas170 x 13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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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Floating,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 mounded on canvas100 x 13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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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Flowers , 2023acrylic, oi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130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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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Follower,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canvas30 x 4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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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Forest Guardian, 2024ceramic12.5 x 12.5 x 19 (h)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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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In the center, there is light,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mounted on canvas100 x 13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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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Merging with the Environment, 2024acrylic, oil oilpastel on canvas140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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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Migratory Being, 2023oil, oil pastel on canvas190 x 24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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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Moonflowers, 2023oil, oil pastel on canvas70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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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Napping, 2024charcoal, 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40 x 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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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Nocturne, 2024oil, oil pastel on canvas100 x 1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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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Pearl Kette, 2024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40 x 3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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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Purple Curtain, 2024acrylic, oil, oil pastel, colored penci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50 x 4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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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Whispering of the clouds,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canvas200 x 16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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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Valley of the Shadow , 2024oil, oil pastel on canvas160 x 2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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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Veil of innocence, 2024ceramic11 x 13 x 21.5 (h)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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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Sonnenschirm, 2024oil, oil pastel, graphite,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40 x 3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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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oujinTaucher, 2024acrylic, oil, oil pastel on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30 x 40 cm